유메노 하나(@Hayato_59_)
이변은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찾아왔다.
언제나처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버린 검붉은 와이셔츠를 입고 마이를 입고서 거울 앞에서 마지막으로 깔끔하게 옷을 정돈하고는 집무실로 천천히 걸어가며 오늘 일정을 찬찬히 떠올렸다.
“오늘은 딱히 급한 일은 없나…”
동맹패밀리에서 친 사고를 어째서 자신이 수습해야 하는 지는 모르지만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한 탓에 피곤함에 물든 목소리가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집무실에 도착해 자신의 자리에 앉아 새로 올라온 서류와 보고할 때 필요한 서류를 분류했다.
곧 깔끔하게 정돈된 책상에서 필요한 서류를 들고 일어나자 살짝 현기증이 일었지만, 살짝 이마를 짚으며 찌푸릴 뿐 도로 자리에 앉기엔 시간이 없었다.
“..또인가…”
최근엔 이렇게 어지럼증을 느끼는 일이 잦아져 검사를 받아봐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럴 시간에 쥬다이메의 일거리를 하나라도 줄여들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며 피일차일 미뤄왔다.
게다가… 요즘 들어 잠을 자도 풀리지 않고 쉽게 느껴지는 피로감에 무거워진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당사자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그나마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지..."
더 무거워진 몸을 겨우 움직여 쥬다이메의 집무실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지체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조금 서둘러 걸어 목적지에 도착하여 문을 가볍게 두 번 노크했다.
"들어와."
언제나처럼 듣기좋은 미성이 들리자 문을 열며 가볍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쥬다이메, 간밤에 잘 주무셨습니까?"
"응, 난 잘 잤어. 고쿠데라군은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
"네, 살짝 잠을 설쳤을 뿐입니다. 걱정 끼쳐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그래서 오늘은 어떤 일이야?"
천천히 다가가 쥬다이메께 서류를 건네드리자 밝은 호박색 눈동자가 서류 위의 글자들을 훑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서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서류를 보시던 쥬다이메께서 나를 빤히 바라보시기에 무언가 잘못되었나 걱정이 되었다.
"쥬다이메, 왜 그러십니까?"
"고쿠데라군, 방금 그 설명 했었는데..."
"네?"
"...아냐, 계속해."
"네, 쥬다이메.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만...."
다시금 브리핑을 이어감에도 움직임 없는 쥬다이메의 눈동자를 애써 외면하고는 끝까지 보고를 이어갔다.
"고쿠데라군."
"네, 쥬다이메."
"일이 많은 건 알지만 너무 무리하지 마. 일이 조금 미뤄진다고 해서 큰일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응..."
다시금 허리를 숙이고 쥬다이메의 집무실을 벗어나 이마를 짚었다.
그렇지 않아도 피곤했던 몸이 제대로 쉬지 못한 탓에 계속해서 현기증이 느껴져 큰일이었다.
"하야토~!"
내 이름을 부름과 동시에 빠르게 다가오는 인기척에 이마에서 손을 떼고 바라보자 역시나...
"야마모토."
"타케시라고 불러달라니까..."
"질리지도 않냐, 그만 좀 포기해."
"그렇지만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를 언급하며 살짝 올린 손엔 내 손에 끼워져있는 반지와 같은 세공이 들어가 있지만 박혀있는 보석의 색이 다른 반지가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있었다.
"공(公)과 사(私)는 구별해. 바보야."
"하하하 그렇지만 지금은 복도니까 사(私)가 아닐까?"
"나참... 그런 머리로 제대로 공부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그랬으면 서류 한 장이라도 더 맡겼을 테지."
"읏... 난 지금이 좋아."
"그래서...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거냐?"
"아... 어제저녁에 새로 임무를 받았거든. 출발하기 전에 네 얼굴 보고 가려고 했는데 없길래 여기 있나 하고-"
"뭐? 그런거 였으면 어제 말을 했어야지!!"
"...ㅇ...아하하... 어제 하야토 바빴잖아. 찾아갔더니 내가 온 줄도 모르던걸..."
"...아... 쥬다이메껜 인사한 거야?"
"아까 했어."
"...엇갈렸었군..."
"그런데 하야토..."
"왜 그래?"
"어디 아파?"
"뭐?"
"안색도 좋지 않고....."
"어제 네 말대로 바빠서 그래.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그런 거라면야..."
안심이 되지않는다는 듯 바라보다가 갑자기 환하게 웃는 녀석 때문에 순간 주춤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그럼 내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하야토를 안아서 옮겨줄까!?"
"...뭐? 됐어! 고작 몇 걸음 되지 않는데 그런 꼴사나운 걸 해야 하냐?"
"하야토..."
"쓰러진 것도 아닌데 유난이라고..."
"하지만 네가 힘들어하면 나도 슬프다고..."
"...젠장, 어찌 된 게 넌 낯간지러운 말을 그렇게 잘도 내뱉는 거야!"
절로 달아오르는 얼굴을 감추려고 내 집무실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하지만 그런 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몸이 버티지 못한 걸까...
다시금 어지러워지는 현상에 더욱 속도를 높였다.
"하야토 같이 가!"
오지 말라고 해야 하는데 괜한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아 입을 꾹 다물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 뒤를 바짝 쫓는 발걸음 소리에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몸을 지배했지만, 마지막 코너를 돌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결국 벽을 짚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으윽...!"
"하야토!!!!!"
놀란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리며 다급하게 나를 붙드는 손길이 잘게 떨려왔다.
"ㅇ...왜...그래...."
".....조...금 무리를 했...을 뿐이야..."
담담하게 뱉어내려고 해도 어질어질한 머릿속이 엉망으로 엉키는 느낌이 들었다.
"하야토 의무실로 가자."
"괜찮다고... 하아... 넌... 출발이나 해..."
"하야토!"
"네가 아픈데 내가 어떻게 가!!"
"....공과 사 구별하라고 했잖아..."
여전히 어지럽지만 일에, 그것도 임무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천천히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야마모토가 그나마 붙잡아준 덕에 다시 주저앉는 일 없이 일어날 수 있었다.
"봐. 이제 괜찮아졌어."
"...그럼 내가 다녀오면 그땐 같이 검사받으러 가자."
"어제 늦게까지 일했을 뿐이지, 어디 아픈 게 아니라니까..."
"...그게 아니면 나 가지 않을 거야."
"...네가 애냐."
"그 정도는 약속해 줄 수 있잖아..."
"...알았어."
"약속한 거야."
"알았다고!"
"그럼... 실례."
"야!!"
"데려다주기만 할 테니까...."
"....젠장..."
약속을 하자마자 나를 안아 든 녀석 때문에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그런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내 행동에 낮게 웃던 녀석은 몇 걸음 가지 않아 도착한 내 집무실에 문을 몸으로 밀고 들어가 내 자리에 나를 앉혔다.
"그럼 다녀올게. 하야토."
"...그래, 잘 다녀와."
"약속 잊으면 안 돼."
"알았다고."
한참을 날 바라 보던 야마모토가 발걸음을 옮기다 다시금 내게 돌아왔다.
"뭐야?"
"잊은 거."
"뭐?"
-쪽-
순식간에 짧게 맞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에 눈을 크게 뜨고 야마모토를 바라보았다.
"하야토 말대로 시간이 없으니까 이다음은 다녀와서."
"......바...바보가!! 무사히 다녀오기나 하라고!!"
"하하하 알았어. 그럼 다녀올게!"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라 멈칫하긴 했지만 싫지는 않았기에 입가에 작은 호선이 그려졌다.
그리고는 3일 동안 떠나가 있을 녀석의 안전을 바라며 내 손에 끼워진 반지를 몇 번 문지르고는 업무를 시작했다.
업무 중에도 발생하는 어지럼증과 한 번씩 가슴께의 통증에 멈추길 반복하면서도 내 손과 눈은 서류의 글자를 읽어내는데 여념 없었다.
멈칫거리는 시간만큼 지체되는 일에 패밀리의 피해로 오지만 않기를 바라면서...
단순히 피로감 누적으로 인한 것이라는 내 생각이 틀렸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 한 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제대로 쉬지도 못한 탓에 점점 잦은 통증을 느끼더니 기어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야마모토가 귀환하는 날이라 오늘을 위해 어제까지 일을 당겨서 처리했기에 피로도 상당했다.
야마모토가 도착하면 내게 알리라고 지시를 내려놨음에도 그의 차량이 본고레 성내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일까 계속 힐끔거리며 창밖을 응시하는 시간이 많았다.
마침내 기다리던 차가 들어오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급하게 일어난 게 원인일까, 순간 머리가 핑 돌며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니 느껴지는 시트의 감촉이나 소독약 냄새,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방과 다른 하얀 천장에 이곳이 병실임을 직감했다.
"하야토!"
내가 눈을 뜨길 기다렸다는 듯 들려온 그립고도 애처로운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리자 야마모토가 울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왔냐."
"....응, 다녀왔어."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무사 귀환이야..."
"그러냐... 다행이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야마모토의 얼굴을 보자 다른 말이 나왔다.
'나도 어지간히 이 녀석에게 푹 빠진 모양이야...'
내 손을 감싸 쥐는 커다랗고 따뜻한 두 손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웃는 걸 보니 이제 좀 괜찮은 거 같아서 다행이야."
"너야말로 좀 웃어. 매번 웃던 녀석이 울기는..."
"하하하... 나 울지 않았어..."
"건들면 울 것 같다고 바보야."
"하야토가 쓰러졌는걸...."
"...놀랬냐."
"당연하지, 하야토를 보러 갔다가 바닥에 쓰러진 거 보고 내가 얼마나..."
그때의 상황이 떠오른 모양인지 잘게 떨리는 손을 살짝 마주 잡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세시간..."
"뭐?"
단정하긴 하지만 혈향이 배어나오는 야마모토였기에 길어봐야 한 시간 이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보고가 끝나고 내게 곧장 왔다가 쉬러 갈 생각이었는데 지금까지 곁을 지켜준 건가 싶어 조금 고마웠다.
"이제 너도 쉬러 가."
"...약속."
"......야마모토."
"약속 지켜 하야토."
"...하아 야마모토, 나 괜찮다고 했잖아."
"약속했잖아. 그렇지않아?"
"...젠장..."
단호하리만큼 냉정한 얼굴과 말에 결국 일으키려던 몸을 다시 침대에 눕혔다.
수액을 맞는 중임에도 여전히 어질한 머리와 피로감에 사실은 일어나기 싫었던 것도 한몫했을지 모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야마모토가 호출한 의료진이 내 곁에 다가와 간단한 문진을 시작했다.
야마모토에게 자리를 비켜달라 부탁했지만, 진지한 녀석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벽에 기대어 서서 묵묵부답이었다.
"언제부터 이런 증상을 겪으셨습니까?"
"...쓰러진 건 이번이 세 번 일 거 같군."
"...하야토."
"다른 증상은 있으셨습니까?"
"두통이랑...."
"...나가지않을거니까 전부 말해."
"...하아... 두통이 종종 있다. 그리고 가끔이지만, 심장이 빨리 뛰는 듯한 느낌이나 숨쉬기 힘들기도 하고."
"...그런 증상은 언제부터..."
"서너 달쯤 됬나..."
"후........."
내 말이 끝나자 깊게 내쉬는 한숨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 외에 더 추가적인 문진과 청진을 끝낸 의료진은 내게 하루 동안 홀터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소형 심전도 기계를 내게 부착시켰다.
밤에도 이걸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귀찮긴 했지만 그래도 이왕 검사를 받는다면 제대로 받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기에 군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나마 원래라면 병실에 있어야 하는 것임에도 허리춤에 장치의 본체를 매달고 다니는 거로 합의를 봐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걸로 하야토가 아픈 이유, 정확히 아는 거야?"
"정확하게... 라고는 장담하지 못 합니다만, 지금 제가 의심하고 있는 병명이 맞는지 확인은 가능합니다. 그 후에 추가적인 검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만...."
"...내일 기계를 제거할 때 추가로 받는 거로 하지."
미리 일을 처리해둔 덕에 오늘 여유가 있었지만,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 그 여유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추가적인 검사를 받겠다고 했는데 야마모토는 무엇이 불만인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견디지 못한 내가 시선을 돌리는 건 당연지사.
"내일 이 시간이지?"
"네."
"...검사는 받았으니 넌 이제 돌아가서 쉬어."
"하야토가 수액을 다 맞으면 갈게."
"피곤하잖냐, 난 괜찮다고."
"내가 가면 냉큼 일하러 갈 생각이지?"
"........"
내일 검사를 받으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오늘 조금이라도 더 처리해두는 편이 낫기에 바로 돌아가 볼 생각이었다.
역시 함께한 시간이 헛되진 않았는지 바로 내 생각을 꿰뚫어 본 녀석 때문에 시선을 돌렸다.
무언의 압박을 할 생각인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야마모토 때문에, 그리고 굳은 표정 때문에 말을 걸기 쉽지 않았다.
"...야마모토."
"응. 왜 그래?"
"....걱정끼쳐서 미안하다."
"...하하하... 사과는 됐어. 하지만 넉 달 동안이나 아팠으면서 그걸 말 안 한 건 서운한데..."
"...그건... 일상생활하는 데 크게 문제가 없었으니까."
"쓰러지기까지하는데 ..."
"이제 세 번째라고 했잖아. 이번엔 피곤해서 그런지 조금 시간이 길었지만..."
"그럼 좀 자는 게 어때? 다 맞으면 내가 깨워줄게."
"너도 피곤하잖아. 임무 보고 끝나고 줄곧 여기 있던 거 아니냐?"
"대신 나는 하야토처럼 서류랑 씨름하는 일이 적으니까. 임무를 다녀오고 나면 쉬기도 제대로 쉬잖아. 그러니까 걱정 말고 쉬어."
"....마음대로 해."
야마모토 말대로 피곤하기도 하고 수액을 맞는 동안 이야기나 해볼까 했지만, 얼른 자라며 이불까지 덮어주는 녀석을 보다 눈을 감았다.
확실히 피곤하긴 했던지 금세 수마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뭔가 따뜻함에 눈을 뜨니 나를 끌어안고서 잠이 든 야마모토의 얼굴이 보였다.
이미 팔에서 수액 바늘까지 제거된 상태였으니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자는 녀석을 깨울 수도 없어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새삼 우리가 이렇게 마주하고 있던 게 오래전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야마모토는 임무로 주로 자리를 비웠고, 나는 성내에 있다고는 하지만 거의 집무실에 박혀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내 시선에 잠이 깬 모양인지 나를 강하게 끌어안는 야마모토를 마주 안았다.
"...하야토..."
"그래, 일어났냐?"
"...좀 어때?"
"이젠 멀쩡해. 너 분명 수액 다 맞으면 깨운다고 하지 않았냐?"
"...미안, 많이 피곤했는지 하야토가 바늘을 빼는데도 일어나지 않아서..."
"...됐어. 어차피 지나갔기도 하고... 일단 방에 가고 싶은데."
"응. 데려다줄게."
서로 몸을 일으켜 병실을 나왔다.
더 같이 있고 싶지만 저 녀석도 쉬어야 하고, 생각보다 거슬리는 장치에 내일 검사가 끝나고 시간을 보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야토... 일이 많긴 하지만 좀 쉬면서 해."
"......내가 쉬면 쥬다이메께서 힘들어지신다고..."
"알아, 하지만 우리 밑의 사람들도 그렇게 무능한 게 아니잖아. 조금은 하야토의 짐을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해서..."
"....하아 참고할게."
"응."
그렇게 내가 피곤해 보였나 싶지만, 쓰러진 걸 봤을 녀석이 받았을 충격을 생각해서 매몰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느덧 도착한 내 방 앞에서 나는 녀석을 불렀다.
"어이, 야마모토."
"응?"
-쪽-
넥타이를 당기자 서로의 입술이 가볍게 맞닿았다.
"...이 다음은 내일 검사가 끝나고."
말을 내뱉으며 바라보니 내가 먼저 할 줄은 몰랐는지 놀라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얼굴이 잔뜩 붉어져 버린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는 내 허리와 뒷머리를 감싸선 끌어안으며 목에 얼굴을 묻는 야마모토를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유혹하지마. 이다음에 내가 뭘 할 줄 알고..."
"바보냐, 너랑 하루 이틀 연인인 것도 아닌데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하하하, 정말 하야토를 당해낼 수가 없다니까."
"그럼 빨리 놓고 자러 가. 지금까지 씻지 않아서 더러운데 누굴 끌어안는 거야?"
"윽... 가차없네..."
"뭐... 키스 정도라면 굿나잇 인사로 괜찮겠네."
"...하하하 진짜..."
어이없다는 듯 웃던 녀석은 살짝 떨어졌다가 그대로 입술을 맞대어왔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는 순간 나는 야마모토의 목에 팔을 휘감았고, 그것에 맞춰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가 밀려들어 왔다.
가볍게 서로의 혀가 타액 때문에 질척이는 소리를 내며 엮어졌다.
안으로 들어가면 나 또한 자제할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아 문 앞에서 시작한 입맞춤이었는데, 야마모토의 혀가 내 치열을 훑고 입안의 여린 부분을 건드리자 서서히 달아오르는 몸에 어깨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잠...!"
고개를 뒤로 젖혀 말려보려 했지만, 다시금 뒷머리를 누르며 혀를 엮는 녀석의 행동에 점차 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러다 거의 매달릴 때쯤이 돼서야 야마모토는 입을 떼며 웃어 보였다.
"잘자, 하야토."
"...젠장... 이다음은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
"하하하- 그건 내일이 되면 알 테니까. 일단 오늘은 푹 쉬도록 해. 그래야 내일 검사도 잘 받을 거잖아?"
"시끄러. 알고 있으니까 너도 가서 쉬라고."
"응, 그럼 내일 봐-."
"...그래, 잘 자라."
손을 붕붕 흔들다 자신의 방으로 쏙 들어가는 녀석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내 방으로 들어왔다.
옷을 벗어 내리다 순간 느껴진 허기에 생각해보니 아침을 먹고는 그 뒤에 먹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렇게 쉬어놓고도 피곤한 몸에 내일 아침에 먹기로 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자다가 갑자기 호흡하기 힘들다거나 아침에 머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그간 있었던 일인만큼 특별한 일은 없었다.
옷을 단정히 입고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었다.
이상하게 풀리지 않는 피로에 그간 너무 힘들었다고 치부하고는 집무실에 돌아가 일 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사를 약속한 시간이 되기 30분 전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혹시나 추가적인 일이나 급한 일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들어온 사람은 야마모토였다.
"데리러 왔어."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데리러 와?"
"오늘은 좀 어땠어?"
"어제 쉰 덕에 나쁘진 않았다만."
"하하하 그럼 진짜 다행이네. 그거만 마저 끝내고 갈 거지?"
"...그래."
원래라면 보고 있던 서류와 다른 것들도 좀 훑어볼 생각이었지만 야마모토가 온 이상 그것은 조금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니니까.
보던 서류를 마저 검토하고 내려놓자 다가오는 녀석의 모습에 고개를 들었다.
"갈까?"
"아직 시간이 남았다만?"
"응, 그렇지만 미리 가서 있는 게 좋잖아. 그만큼 빨리 끝낼 수도 있고."
"알았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내밀어지는 손을 마주 잡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 놓기 싫었던 손을 붙잡은 채 의무실로 갔고, 장치를 제거하고 분석하는 동안 다른 검사를 받기로 했다.
그간 제대로 된 검진을 받지 않은 탓인지 공복 상태로 확인하는 검사들을 제외하고 종합검진 수준의 검사를 시키는 의료진을 한번 바라보았지만, 야마모토가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보는 게 어떠냐며 몇 번이고 간곡히 말리는 탓에 결국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며칠 걸린다고 했지만 검사만으로 진이 빠져버린 나는 알았다고 하고는 의무실을 나왔다.
일단 진통제와 빈혈약을 받아 들고나온 나는 집무실로 향했고 뒤이어 나온 야마모토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야마모토?"
"하야토, 어젯밤 일 뒤이어서 해야지?"
"뭐? 나 할 일이 있...!!!"
"하하하 검사받느라 힘들었잖아~"
"이 바보가! 내려놔!!"
"응- 방에 가서~"
냉큼 날 안아 올리는 녀석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밀리지 않았다.
그 상태로 야마모토의 방으로 향하면서 나는 붉어지는 얼굴을 품에 숨기며 이를 갈았다.
아무리 밝혀진 연인이라고는 하지만 공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여전히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방앞에 다다라서야 나를 내려주는 야마모토의 발을 꾹 밟아준 나는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살 그만 부리고 들어와."
"도망갈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와서 무슨."
"그런가?"
"그래."
"그럼 나도 사양 않고..."
물 흐르듯 아까의 장난치는 듯한 분위기가 간질거리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서로의 시선이 얽히고, 서로의 입술이 맞닿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 몸은 침대 위에 눕혀졌다.
그 위를 덮듯 야마모토가 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어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야마모토의 모습에 침을 꼴깍 삼키는데 갑자기 내게 이불을 덮어주는 게 아닌가?
순간 방금까지의 분위기 쪽이 장난이었다는 듯한 행동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하는거냐, 야마모토 타케시."
"하하하...미안, 하지만 생각해보니까 하야토가 나가고 나서 의료진이 내게 당부한 말이 있거든."
"당부한 말?"
"응, 검사 결과 나오기 전까지 네가 무리하면 안 되니까 격한 운동은 하지말... 우아아악!!"
"....젠장 그럼 처음부터 날 데리고 이 방에 오지 않았으면 되잖아!!"
"ㅎ.ㅎ... 하지만 나도 하야토랑 하고 싶긴 해서 대신 같이 잘까 하고!!!"
"...시끄러!!!"
엇측을 했다는 사실에 얼굴이 달아올라 품에서 다이너마이트를 잔뜩 꺼냈다.
실제로 심지에 불을 붙이지도 않았는데 당황하는 녀석이 하는 말은 내심 만족감도 불러일으켰다.
그래도 그런 말까지 듣고서 나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온 행위에, 그리고 의료진이 저 녀석에게 했던 당부에 정말 수치사 하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흥분한 내 몸 상태에 순간 호흡이 가빠졌다가 안정을 찾았다.
그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는 안절부절못하는 녀석을 보니 당부를 어겨도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옷이나 내놔. 정장 입고 자기엔 불편하다고."
"응! 알았어."
검사 도중 둘 다 끼니는 챙겼기에 조금 이르긴 해도 잠자리에 들기에 나쁘진 않았다.
금세 내가 입을만한 옷을 건네는 야마모토의 손에서 옷을 낚아채고 욕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갈아입고 나오니 그사이 옷을 갈아입은 녀석의 모습에 멈칫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바로 쉴래?"
"...어."
정장에서 빼 온 담배를 한 개피 입에 물자 '담배도 줄여야 한다던데....' 라며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들었지만 무시했다.
오늘은 오전에 빼고 오후엔 이게 처음인 것도 있고 녀석도 알고 있던 탓인지 제지하지 않고 창문을 여는 행동에 나도 창가로 향했다.
"...야마모토, 넌 어디 아픈 데 없냐?"
"나?"
"그래."
"나야 임무 때문이라도 자주 검진 받고 있으니까 안심해."
"...다행이네."
"왜 그래? 검사 결과가 좋지 않을까 걱정돼?"
"...조금."
검사를 받는 도중 떠오른 어머니의 모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한부를 받고도 최대한 건강한 모습으로 나를 만나셨던 분이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숨을 거두셨으니까.
지금까지는 어떤 병인지까지는 알아보지 않았지만, 만약 그게 유전되는 거였다면... 뒤늦게 내게 발병한 것이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난 계속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함께...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챈 듯 평소라면 담배를 피우는 나에게서 조금은 거리를 둘 야마모토가 백허그를 해왔다.
"...바보가 떨어져."
"괜찮아, 별거 아닐 거야."
"......"
"그리고 나는 언제나 하야토 옆에 있을테니까."
"...뭘 진지해지는 거냐, 그냥 두통이 심해져서 그런 건데."
"하하하 그런가?"
"그래."
그래도 야마모토가 곁에 있는 거라면 나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담배를 끄고 야마모토의 손을 잡은 채 침대에 누웠다.
"잘자."
"응, 잘자. 하야토."
우리 둘은 서로를 끌어안고 잠을 잤다.
야마모토는 내 일을 돕겠다며 내 곁에서 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결과가 나왔다는 연락에 내 손을 잡고 함께 의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의료진에게 내 병명에 대해 들었다.
심장병의 일종이라는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아직은 약물로 처치가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다만 흡연이 계속되고 증상이 악화가 되면 심정지가 올 수도 있다거나 너무 무리한 운동은 하면 안된다거나(다행히 일반인보다 계속 운동해온 것이 있으니 평소보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라고 했지만)
"하야토 이제 담배를 끊어야겠네?"
"...젠장..."
"내가 옆에서 도와 줄테니까."
"...노력은 해보겠지만 바로는 무리야."
"응응. 하야토는 할 수 있어."
아직은 괜찮다는 말에 안도하면서도 앞으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좀 어려웠다.
그래도 뭐 저 녀석이 있으면... 어떻게든 되려나.
내 자리를 지키려면, 그 정도 노력은 해야겠지.
저 녀석에게만 쥬다이메를 맡기기엔 불안하니까.
나름의 긍정적 소식을 뒤로하고 그날 우리는 불안했던 지난 밤을 뒤로하고 앞으로 잘 이겨내자는 의미로 같이 밤을 보냈다.
저 바보가 의료진에게 '무리한 운동'에 대해 자세하게 묻고 오는 바람에 자제하는 법을 배워온 것은 나름의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