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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밍(@rainy_mood_80)

안녕, 고쿠데라. 

 

 아니아니! 너 지금 이거 쓰레기통에 버리려 했지? 제발 버리지는 말아줘. 아마 쓰는데 오래 걸릴 것 같단 말이야... 편지 같은 거 받기만 해봤지 써보는 건 처음이라서 말이야... 길게는 못 쓸 것 같은데 사실 쓰는 것도 며칠이나 걸릴 것 같아... 그냥 읽어만 줘. 부탁이야. 

 

오늘은 너에게 두 번째로 고백 한지 3일이 되는 날이야. 너는 아직도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아프더라. 장난 아닌데. 네가 츠나랑 같이 있지 않으면 나한테 얼굴도 보여주지 않으려 하고, 그 상황에서 다시 너에게 진지하게 얘기할 수도 없고... 결국 이렇게 편지까지 쓰는 거야. 

 

음. 막상 쓰려고 하니까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좋아해, 고쿠데라. 정말 많이 좋아해. 언젠가 부터 너만 보면 뭔가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더라. 아니 안씻고 다니는 건 아니고... 나 운동해서 아침저녁으로 샤워 열심히 하는데. 아무튼 그런 느낌이 들었어. 뭔가가 그런 느낌들이 너무 낯설고 당황스러워서 야구부의 오다한테 물어봤는데 걔가 그러더라고. 사랑이라고. 좋아하는 거라고. 갑자기 얼굴이 화끈해지더라. 누구냐고 계속 물어보는 그 녀석한테서 도망가는 게 조금 힘들었어. 그때였을걸, 나 여자친구 생겼다고 소문난거... 아니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도 힘들었어. 근데 그때부터 정말 너만 보면 뭔가 도망가고 싶고, 숨고 싶어지더라. 그런데 그러면서도 한번 그런 마음을 눈치채 버리니까 머릿속에 온통 네 생각 밖에 안 나면서 아무 이유도 없이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많이많이. 계속해서 아른거리고, 보고 싶었어, 고쿠데라.

 

 너도 나도 츠나도 3학년이 되었고, 하필 너와 츠나는 같은 반이고 나만 다른반이 되어버린 지금에서야 내가 널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는지는 잘 모르겠어. 원래 너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네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 네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3학년이 되고 스쳐 지나간 너의 어느 순간에 반해버린 건지. 그런데 고민 해 봐야 이미 나는 너를 많이 좋아하고, 그 사실은 되돌릴 수가 없었어. 이미 너를 보는 내 시선이 많이 달라진 게 나 조차도 느껴져서 처음에는 숨기기에만 급급했지. 아무래도, 너는 나를 너의 동료? 아니면 츠나의 수호자? 사실 너는 나를 친구로도 생각 안 하는 것 같을 때가 많아서 말이야. 친구로라도 생각해 주면 좋을 텐데. 그런데 거기서 더 생각해보니 친구로도 생각 안 해주는데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 까지 들켜버리면? 너무 싫잖아 그건 정말..

 

 그런데, 고쿠데라. 내가 그렇게 반년쯤 살아봤거든. 도저히 힘들어서 안 되겠더라. 너가 과제 때문이긴 해도 다른 여자애들이랑 얘기하는 것도 싫었고, 츠나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츠나한테 웃어주는 것도 보기 싫었어 사실. 내가 뭘 하는 건가 싶긴 한데 싫은 건 싫은 거더라. 나랑만 조별과제 같이 했으면 좋겠고, 나한테만 웃어줬으면 좋겠더라. 알아 욕심인 거. 말도 안 되는 거. 근데 그런 한심한 질투가 계속 나고, 혼자 속으로만 썩이고 있고 그렇다고 너한테도 표현도 못하겠고, 너는 나한테 매정하기만 하고. 그러다가 처음으로 좋아한다고 얘기해버렸잖아. 뭔가 내가 생각했던 고백은 아니었어... 고백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데 마음이 갑자기 튀어나간거라서 그렇게 너희반 교실 문 앞 에서 다른애들 다 보는 데서 좋아한다고 소리 질러 버렸지... 그건 정말 미안해. 츠나랑 사사가와가 자기들도 고쿠데라군이랑 나를 좋아한다고 해줘서 잘 안넘어갔으면 정말 나는 다시는 네 얼굴도 못 봤을 거야. 물론 그때도 한 일주일 정도는 너한테 미안해서 피해다녔지만... 너가 그때 별 것도 아닌걸로 왜 피하냐고 물어봤을때 정말 울고 싶었다구... 맹세코 너가 싫어서 피한 게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였지... 나에게는 별것 아닌 게 아녔다고.. 

 

 한 번 그렇게 고백아닌 고백을 하고 나니까 더욱더 감정이 주체가 안 되었어. 매일 잘못 눌렀다고 하면서 아무 이유 없이 너한테 전화 걸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조금 더 전화 하고 싶어서 전화 건 김에 숙제 했냐 물어보고, 공부 하지도 않을 시험범위 물어보고... 진짜 미친 척 하고 밤늦게 전화 한 적도 있었지. 너가 자다 깨서 내 번호를 못 보고 전화만 받았는지 누구냐고 물어봤을 때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내리는 것 같더라. 심지어 너가 다음 날 아침에 내가 전화 했던 것도 기억 못 해서 혼자 얼마나 속상했는지. 그 뒤로는 밤늦게는 전화 안했지만... 내가 잘 못 한 거 알면서도 정말 많이 속 상할 만큼 네가 점점 좋아만 졌어, 고쿠데라. 이렇게 말하면 분명히 싫어하긴 하겠지만. 그냥 네가 가만히 서 있는 것만 봐도 예뻐 보이고, 책 읽는 것도 예뻐 보이고. 밥 먹는 것도 예뻐 보이고, 다 예뻐만 보이더라. 이거 진짜 중증이지 싶은데 어쩔 수 없어... 그냥 그렇게 보였는걸..

 

 이번엔 제대로 고백 하자 해서 벼르고 별렀는데 오늘도 제대로 되진 않았지. 츠나가 교무실로 불려가서 우리 둘이 먼저 옥상으로 올라갈 때 이때가 기회다 싶었어. 마침 옥상에도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보였고... 날도 좋았고.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하고 앞서가던 너를 불러 세우고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듯 하면서 고쿠데라 많이 좋아한다고 얘길 했는데... 거기서 히바리가 튀어나올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히바리녀석, 오늘따라 기분은 왜 그렇게 안 좋아 보였는지. 그 녀석, 무리 짓는 기준이 3명부터 아니었어? 오늘 분명 고쿠데라랑 나 밖에 없었는데 왜 그렇게 난동이었는지. 그렇다고 싸울 수도 없어서 도망가느라 고백도 또 망해버리고... 점심도 못먹고. 아, 배고파졌다. 고쿠데라는 오늘 저녁 뭐먹어? 저녁 우리 집에서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고쿠데라 우리 집 오는걸 싫어해서... 고쿠데라 맨날 편의점 삼각김밥 같은 걸로 때우니까 점점 말라가는 것 같아서 너무 슬퍼..

 

 아무튼, 그날까지 그렇게 망해버리고 오후수업 시간 내내 멘탈이 부서져 있다가 결국 이렇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 편지지를 샀어. 역전찬스에서 루킹 삼진이나 초구에 2루수 땅볼쳐서 병살타 나왔을 때보다 그때가 더 멘탈이 터지더라. 편지지 사본 게 초등학교 시절에 어버이날 편지 쓸 때 이후로 처음인 거 같아. 고쿠데라 취향의 편지지를 사고 싶었는데 나미모리의 문구점을 다 돌아봐도 해골무늬 편지지는 없더라.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거로 골랐어! 강아지가 너무 귀엽지 않아? 고쿠데라도 강아지를 좋아해 주면 좋을 텐데. 편지지를 샀는데 연습하면서 써 내려가다 보니 생각보다 많이 부족하더라. 그래서 공책도 샀어. 공책에다가 미리 연습으로 몇번이나 써봤는데 한 글자, 한 글자 너무 꾹꾹 눌러써서 여기 가운뎃손가락 안쪽에 굳은살도 베겼어. 그만큼 나에게 이 편지는 너무 소중하고 중요해, 고쿠데라. 조금은 전해졌으려나. 제발 그렇길 바래.

 

 고쿠데라, 나도 쉽고, 가벼운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아줬으면 해. 차일 땐 차이더라도, 고백은 하고 싶었어. 제대로 된 고백말이지... 돌고돌아 이렇게 써본 적도 없고 자신도 없는 편지를 고르긴 했지만, 마음은 진심이야. 츠나의 수호자도 아니고, 동료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고쿠데라의 연인이 되고 싶어. 아까도 썼지만 6개월 동안 참고 참다가 힘들게 하는 고백이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금까지처럼 누구와 싸우게 되던지, 내가 야구를 계속하던지 어쩌던지 모르겠지만, 너와 같이 가고 싶어. 내 곁에 네가 있어 줬으면 좋겠어. 네 옆에 있는 것도 나 였으면 좋겠고. 그래서 이렇게 용기 내서 선을 조금 넘어보기로 했어. 

 

 사실 좋지 않은 대답을 들을 것 같은 예감도 들고, 그 뒤에 우리 사이가 어떻게 변해버릴지 나는 모르겠어. 이런 적 없는데 무섭기도 해. 하지만. 그래도 너의 대답은 듣고 싶어. 내 마지막 용기야. 빨리 대답을 듣고 싶지만 만약 시간이 필요하다면 어떻게든 말을 해줘. 나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고쿠데라에게 몇시간 만에 대답해 달라고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이잖아? 고쿠데라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충분히 이해 해. 대신 언젠가 대답은 꼭 들려주었으면 좋겠어. 시간이 길어지면 나 괜히 기대할 것 같으니 너무 길지는 않았으면 좋겠지만..

 

 아. 쓰다 보니 길어졌다. 나는 세 줄이 넘어가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서.. 진짜 바보 같지? 그래도 고쿠데라는 나랑 다르니까 읽을 수 있겠지. 무슨 뜻인지도 잘 알아줄 거라 믿어. 이제는 이 편지를 어떻게 전해줘야 할지 고민해야 겠다. 그럼, 고쿠데라. 내일 아침에도 츠나의 집 앞에서 만나. 

 

야마모토 타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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